라이프 my life/매주하는 주말농장여행

정화조공사를 하고 마당이 리셋된 날

uchonsuyeon 2021. 4. 12. 12:54

정화조 업체를 바꾸고 빠르게 공사 날짜가 잡혔다. 돌아오는 금요일이었다. 남편은 욕실 설치부터 한다고 용산에 있는 에이스 공구 쇼핑몰에 가서 이것저것 구매했다. 오래간만에 쇼핑을 할 수 있다며 나를 꼬드겼지만, 그곳은 인테리어 공사 용품을 주로 판매하는 곳이었다. 한꺼번에 쇼핑할 수 있어서 좋았지만, 인테리어 용품도 아니고 흥미가 뚝떨어졌다. 허허. 마침 배탈이 났는데, 화장실은 좋더라. 

아이가 배고프다고 해서 물건을 구입후 식당을 찾으러 가는데 그 사이 애들이 차 안에서 잠들어버렸다. 아. 이러 좋은 기회가. 잠든 틈을 타서 양평으로 튀어왔다. 검색을 하다 보니 용문역에 나해라는 한정식집이 평점이 좋길래 방문했다. 고기. 고기. 고기. 애들도 우리 모두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많은 곳이 제1순위인지라 아주 적합했다. 더군다나 맛도 좋아서 '맛있다'를 연발하면서 먹었다. 누룽지도 셀프로 먹을 수 있고 내 사랑 두부구이도 있어 최고였다. 반찬이 다 맛있는 집은 오랜만이다. 담에 또오리라. 으흐흐 

아, 욕실 만드는 걸 안찍었네. 남편과 고른, 제일 저렴하면서 적당한 세면대와 변기가 설치되었다. 다만 결제는 했건만 직원이 물건을 빼먹어서 부품이 부족했다. 변기는 나중에 마저 설치하는 걸로. 아쉬운 남편과 나. 아마추어 치고는 무엇이든지 뚝딱 잘하는 남편이 시멘트까지 꼼꼼히(과하게) 발라서 부족한 부품만 붙이면 제대로 된 화장실이다. 그간 너무 불편하게 살아서 딱히 몰랐는데, 세면대가 있으니 참 좋구나. 발이나 다리에 물이 튀지도 않고, 변기에 앉았다 일어나 그대로 손 씻고 나오는 이 편리함! 몰랐다. 

정화조 공사로 꽃밭이 망가질거라 몇몇 꽃들을 옮겨 두었는데, 튤립이 아주 사랑스럽게 피었다. 고작 2일,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꽃도 다채롭게 피고 봄이다. 아, 무당벌레 두 마리의 데이트 장면도 목격! 예뻐서 찍었는데, 남편이 애들에게 알려주자 마자, 파괴자 둘째가 나타나 못살게 굴어 도망갔다. 흐힝. 

 

다음날 금요일 공사하는 분들이 왔다. 애 둘을 농막안에 가두어 두려고 나도 밖에 나가지 않고 있어서 살짝씩 밖에 구경하지 못했다. 마당을 다 파내고 길의 일부도 빠갤 정도로 생각보다 큰 공사였다. 오전 8시에 시작한 공사는 오후 3시 경이되어야 끝났다. 

아, 그리고 남편의 호언장담으로 남겨둔 일부 꽃밭위의 나무에다가, 공사하시는 분들이 큰 시멘트 덩이를 울려두셨다. 남편이 와서 자기가 다시 사주겠다고 미안해하며 갔다. 나무 2만 5천 원, 찔레꽃 1만 원, 기타 튤립 등등 5만 원... 계산을 하며 울상을 짓다가 나가보니. 회복력 갑인 나무가 살아있네? 다만 남북으로 향하던 가지들이 남동을 가리키고 있었다. 하아 다행이다. 나무 덕인지 그 외 애들도 가지가 조금 부러진 것뿐 멀끔하다? ㅎㅎ 

공사하면서 전기가 나가서 전기로 끌어올리는 물도 못마시고 핸드폰 충전도 못하게 되었다. 1% 배터리가 남은 나는 정말 할 게 없어서 농막 밖으로 기어 나왔다. 비닐하우스에 뿌려둔 수레국화들이 어느 정도 자랐기에 퍼다가 농막 앞의 꽃밭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작년에 심어 둔 애들도 수가 많지 않은 데다가, 예전에 망했던 튤립 구군들을 심어뒀던 것도 또다시 망해서 빈자리가 많았다. 부지런히 수레국화들을 퍼다 날랐다. 아.. 그런데 공사하는 분들이 물조리개도 필요하다며 가져가셨네..... 대야에 물을 담아 폭포수처럼 흘려보내 줄 수밖에... 

공사가 끝나서 다시 꽃밭을 조성했다. 이 꽃밭앞에는 텐트사이트(손님용?)라고 남편이 정성껏 만든 곳이 있었는데, 완전 망 그라 졌다. 평탄화는 고사하고 돌들이 한가득이라. ㅋㅋㅋ 남편도 허무하고 나도 허무하고. 아 그리고 전봇대 앞 공간이 남아서 두 종류의 꽃 씨앗을 뿌려뒀는데, 새싹도 올라오고 있었는데, 공사하시는 분들이 대략 10센티 정도 흙을 돋아주고 가셔서 그것도 망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긍정적으로 보자면 꽃밭을 다시 정돈할 수 있는 아주 멋진 기회였다는 거? ㅎㅎㅎ 이제 화장실도 잘 쓸수 있고 말이다. 비가 오면 정화조가 뜬다며 물을 틀어두라고 해서 한참을 틀어두다가 왔다. 2톤은 물을 담아야 한다는데, 어마어마하구먼. 그리고 생각보다 모터가 저소음이라 시끄럽지 않아 다행이다. 하아 정말 흑한 하루가 지나갔다. (흑한 하루. 전라도 사투리로 힘들다는 뜻 ㅋㅋ어머님 말투~~ ) 

여름에 가까워질 수록 해가 저 산 쪽으로 향하고 있다. 노을도 아름답게 생기고, 고된 하루의 멋진 하늘 마무리였네. 으허허허허 다음 주부터는 돌 고르고 흙 돋으며 고생 시즌이로세. 아 모종도 사다가 심어야지. 참, 저저로 싹이 돋아 올라오는 깻잎 중 4 뿌리를 밭에 옮겨 심어줬는데, 잘 자라고 있다. 그리고 초당옥수수랑 꼬마 양배추도 심어뒀고, 큰 아이와 함께하는데 아이들이 좋아해서 작은 놀이를 하는 기분이다. 

1년 전 무당벌레를 보며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서 걱정스러웠던 큰 아이가, 벌레를 보고 가지고 놀거나 그냥 지나치는 모습이 신기하다. 1년의 주말농장에서 가장 크고 즐거운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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