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my life/생활 life

[98/100 - 100개의 글쓰기] 고양이를 부르는 소리, 아노~

uchonsuyeon 유천수연 2019. 9. 26.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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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노~ 괭이야 이리 와라~'
 할머니는 고양이를 부르실 때, '아노'라는 단어를 쓰셨다. 어려서부터 시골에 맡겨져 자랐기 때문에 할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나는 고양이를 부를 때 '아노'라고 한다. 아이들 등 하원 때 고양이가 보이면 어김없이 '아노'라고 부르며 유모차로 따라간다. 아이들도 나를 따라 '아노'라며 고양이를 부른다. '아노'라는 단어나 '고양이'를 보면 할머니와의 추억과 시골에서의 고양들과의 추억이 떠오른다. 

 내게 할머니는 무척 특별한 존재다. 돌이 지났을까, 그때부터 나는 친가 시골 서산에 맡겨졌다. 유치원생일 될 때까지 였던 것 같다. 그리고 주욱 방학 때마다 맡겨졌다. 시골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바쁘게 돌아간다. 이른 새벽에 일을 나간 어른들은 점심이 되어서야 들어오셔서 식사를 하시고 또 일을 하러 나가셨다. 아주 어린 꼬마에게 시골은 재미난 미지의 세계지만, 사람이 고픈 곳이었다. 그 사람이 고픈 곳에서 유일한 안식처는 할머니셨다. 누군가 무슨 이유에서건 따뜻하게 감싸주는 대상 한 명만 있으면 그 사람 인생이 따뜻하다고 한다. 그런 존재가 할머니셨다. 막내아들의 첫딸이라 더 이뻐하셨나 보다. 그곳은 배를 농사짓는 곳이 아니다 보니 배가 귀했다. 나는 배를 좋아해서 익지도 않은 배를 먹겠다고 따온 적이 있다. 할아버지께서는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면서 화를 내셨고, 할머니는 훌쩍이는 나를 데려가 배를 깎아주셨다. 그 덜 익은 배는 너무 떫고 맛이 없어서 다 먹지 못했다. 사람이 사랑받는 건 말이나 행동에서만이 아니라 그 사람의 표정에서도 베어 나온다. 할머니는 나를 보면 내가 너무 사랑스럽다는 듯이 미소를 보이시고 눈빛을 담아 바라봐주셨다. 큰딸은 살림밑천이라며, 아들 사주라며 막 자랐는데, 오로지 할머니만이 나를 귀여워해 주셨다. 그 사랑받은 기억이 나의 유년시절과 청소년기를 지켜주었다. 

 어느 날 우리 가족은 시골로 내려갔다. 아빠는 검은 양복을 꺼내 입으셨고 우리 모두 단정한 옷차림으로 시골로 향했다. 시골집엔 모든 친척들이 모여 있었다. 잘 오지 않으시던 작은 아빠와 그 가족들도 내려와 있었다. 도착한 다음날 아침은 매우 엄숙했다. 우리는 큰방에 모여 모두 아침을 먹었고, 할머니는 그 옆에 누워 우리를 바라보셨다. 빼쪽 마른 할머니는 축 늘어진 채 우리를 바라보셨다. 나는 아빠에게 '왜 할머니는 식사를 안 하시느냐'라고 여쭤보았다. 아빠는 할머니가 식사를 하실 수 없다고 알려주셨다. 그 누구도 죽음이라는 단어를 내뱉진 않았지만 모두가 알고 있었다. 10살도 안된 나는 그 상황들이 무언가 다름을 알았지만 정확히 알진 못했다. 그냥 그 분위기에 따라 조용히 앉아서 모든 것을 지켜보기만 했다. 
 어느 순간 곡소리가 났다. '아이고, 아이고' '어머니, 어머니'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 죽었지만, 나는 인지하지 못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지고 입관절차가 시작되었다. 할머니 몸을 아들들이 깨끗이 딱이고 삼베옷을 입히고 입안에 (찹) 쌀들과 동전들을 넣었다. 그냥 주무시는 듯한 할머니는 곱게 단장하고 사람들의 도움으로 관으로 옮겨졌다. 그 앞에 병풍이 드리워졌다. 제사 때보던 병풍이 할머니 앞에 드리워졌다. 나는 할머니가 관뒤 앉아 히죽히죽 웃고 계시지 않을까 생각했다. 할머니는 다시 일어나지 않으셨다. 가장 사랑했던 분인데, 여전히 나는 죽음에 대해 인지 하지 못했다. 울지도 않았던 것 같다. 
 손님들이 오고 가고 시간이 되자, 어른들이 관을 집 밖으로 내와 집 옆의 선산 쪽으로 향했다. '이제 가면 언제 오나~' 노래를 부르며 산으로 향했다. 다들 흰옷을 입고 눈물을 훌쩍이며 올라갔다. 어린 우리들 -나와 동생 그리고 사촌언니들-은 산으로 향하는 창문을 바라보았다. 시골에서 한 번도 본적 없는 언니들이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나는 곧이어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그날의 기억은 여기까지다. 

 나는 귀신도 무섭고 무덤도 무섭다. 하지만 시골집 옆산에 묻힌 할머니의 무덤엔 자주 갔다. 시골에 갈 때마다 인사드리러 가고 무덤 위에 드러눕고 잡초 뽑고 할머니와 시간을 잠시라도 보냈다. 지금도 나를 지켜 주실 것 같은 할머니시다. 고양이를 '아노'하고 불러 먹이를 주시고 귀여워해 주시던 분, 나에게 '아노'를 알려주시고 '고양이 친구'를 주신 분. 고양이를 볼 때마다 할머니가 생각난다. 치아 없이 오물거리는 입술로 '아노'하고 고양이를 불러주시던 분의 음성과 모습이 생각난다. 

 우리 동네는 참 고양이가 많아서. 할머니가 자꾸 생각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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